흥미로운 역사를 지닌

타히티의 섬들

역사

타히티의 섬들의 역사는 풍부하며 매우 흥미롭습니다. 기원 전 4,000년경, 동남아시아에서 태평양의 섬을 탐험하기 위해 망망대해를 여행했던 초기 정착민들로 인해 이주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주민들은 기원 전 1,300년경에 통가(Tonga)와 사모아(Samoa)에 정착했습니다. 후에 타히티인들은 기원 전 200년경에 마르키즈 제도로 식민지 건설 항해에 착수했습니다.

그 후 수세기 동안 타히티의 섬들은 식민지 지배를 받았고, 결국 남태평양 전체가 뒤따르게 되었습니다. 폴리네시아의 삼각지대라고 불리는 지역은 북쪽으로는 하와이 섬, 남동쪽으로는 이스터 섬, 남서쪽으로는 뉴질랜드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타히티, 하와이, 그리고 뉴질랜드의 마오리(Maoris) 원주민들은 같은 조상을 섬기고, 마오히(Ma’ohi)로 알려진 비슷한 언어를 사용합니다.

타히티 역사에 대하여

2017년 7월
'타푸타푸아테아 마라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보호지역 지정
1521년
마젤란(Magellan)의 투아모투 제도 발견
1967년
타히티의 섬들에서 수상 방갈로 탄생

타히티 역사에 대하여

유럽 탐험의 시대는 현외 장치가 없는 선박들이 도착하기 시작한 1500년대 무렵 시작되었습니다. 1521년에 마젤란은 투아모투 제도에서 푸카푸카(Pukapuka) 산호도를 발견하였고, 1595년에는 스페인 탐험가인 멘다냐(Mendaña)가 마르키즈 제도의 파투히바(Fatu Hiva) 섬을 방문했습니다. 170년이 지난 후, 영국 호위 함인 돌핀 호(HMS Dolphin)의 선장 사무엘 월리스(Samuel Wallis)가 타히티의 섬들에 처음 방문을 했으며, 적도 아래에 북반구의 중심이라고 생각되는 ‘남쪽의 알려지지 않은 땅(Terra Australis Incognita)’을 발견하기 위해 항해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는 타히티를 “조지 3세의 섬(King George III Island)”이라고 명명하고, 영국의 영토임을 주장했습니다. 월리스의 도착 사실을 몰랐던 프랑스의 항해사 루이 앙투앙느 부갱빌(Louis-Antoine de Bougainville)이 얼마 후 타히티의 반대편에 도착하였고, 프랑스 왕의 영토임을 주장하였습니다.

선장 윌리엄 블라이(William Bligh)가 이끄는 바운티 호 선원들의 폭동이 알려지고, 타히티인들의 아름다움과 자비로움에 관한 이야기가 퍼져나가면서 유럽인들의 타히티 사랑이 절정을 이뤘습니다. 타히티와 남태평양의 매력은 타히티의 동식물 일러스트레이션 및 제임스 쿡 선장이 가져온 태평양 섬의 첫 지도를 통해 계속하여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1800년대에는 고래잡이들, 영국 선교사, 그리고 프랑스 원정대가 도착하면서 타히티 섬의 삶의 방식을 바꿨고, 섬의 통치권을 두고 프랑스와 영국 간의 경쟁이 심해졌습니다.

1880년에 포마레 5세가 타히티와 프랑스에 대한 세습 통치권을 양도하기 전까지, 포마레 왕조가 타히티를 통치했습니다. 1958년까지 타히티의 모든 섬들이 프랑스의 해외 영토로 재구성되었고, 프렌치 폴리네시아로 개명되었습니다. 2004년 프렌치 폴리네시아는 자치권과 상업 및 투자를 통해 국민을 지원한다는 사명으로 프랑스 공화국 내의 해외 국가가 되었습니다.

  • 3,000년 전 섬에 정착한 선원들이 위대한 조상이 되었고, 폴리네시아 문화는 그들의 신화적 기원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신성한 단어들을 통해 대대로 이어져내려온 이들의 문화는 수세기 동안 구전으로 유지되었습니다. 때로는 멸종 위기에 처해있는 것처럼 보였으나, 마지막 순간에 다시 일어났습니다. 오래된 전통을 토대로 오늘날의 가수들은 성스럽고 세속적인 노래를 웅장한 목소리로 노래하며, 안무가들은 화려한 안무에 대한 영감을 얻습니다. 전통 아웃리거 카누 바아(va’a)의 열성적인 팬들 또한 전통에서 영감을 받아 카누를 만들고 라군 위에서 멋지게 항해하는 기술을 발견합니다.

    또한 크고 깊은 파후(pahu), 연주하기 좋은 토에레(to’ere)와 같은 타악기가 생겨났고, 아름답고 복잡한 타투 예술뿐만 아니라 마르키즈 제도의 나뭇조각 예술이 탄생했습니다. 위대한 티키의 자손인 석상들은 숨은 계곡 바닥의 마라에 가운데에 여전히 서있습니다.

    풍요로운 프렌치 폴리네시아 섬들에서는 모든 재능에 자연의 화려함이 더해지고, 공예 기술이 예술 행위로 탈바꿈합니다.

  • “요라나(IA ORA NA)”, “마에바(MAEVA)”, 그리고 “마나바(MANAVA)” 이 세 단어는 폴리네시아인들이 사용하는 환영의 인사말입니다.

    폴리네시아인들은 섬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여행객들과 삶의 즐거움을 나누는 것에 행복을 느낍니다. 이들의 즐거움은 모든 종류의 춤과 음악에 표현되며 종교적인 다성 음악, 전통 타악기 파후(pahu) 및 토에레(toere)의 리듬과 함께 하는 신성한 음악, 또는 활력을 불어넣는 우쿨렐레와 현지 오케스트라의 하모니 등이 이에 속합니다. 폴리네시아인들은 낚시, 서핑, 전통 아웃리거 카누 등 상징적인 스포츠 여가를 통해 즐거움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과거의 증명

    타히티의 섬들의 아름다움과 그 주민들은 방문자들의 마음을 오랫동안 사로잡아 왔습니다.

    부갱빌(Bougainville) (1768): 프렌치 폴리네시아는 우리에게 아주 젠틀하고 친절했습니다. 독립된 군주를 가진 작은 마을로 나뉘어져 있지만 내전이 일어난 적이 없으며, 어떤 종류의 증오도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타히티인들은 서로에게 선의를 가지고 있으며, 이에 대한 의문을 가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집에 사람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항상 대문이 열려있습니다. 각각의 사람들은 가장 먼저 발견한 나무의 열매를 수확하여 집으로 가지고 들어옵니다. 삶에서 필수적인 것들에 대해 이들은 소유권을 가지지 않고, 만물이 모든 사람에게 속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HMAV 바운티호의 갑판장 제임스 모리슨(James Morrison) (1789): 젊은 여성들은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에 향기 나는 꽃이나 판다누스의 흰색 잎인 히나노(hinano)를 장식하고, 판다누스 씨와 꽃으로 목걸이를 만듭니다. 아름다워 보일 뿐만 아니라 스스로와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 기쁨을 줍니다. 우리가 해변에서 본 여성들 중 가장 아름다운 여성이었습니다.

  • 마오히(Ma’ohi)문명의 발생지인 마르키즈 제도는 인상적인 관례와 활기찬 전통을 지켜왔습니다. 피라미드 모양으로 돌을 쌓아 올리는 종교적이고 신성한 장소인 메아에(me’ae)와 파에파에(paepae)는 섬 전역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가치 표현을 위해 타투 예술이 시작되었고, 전통 예술의 부흥기가 찾아왔습니다. 오늘날의 타투는 본연의 의미가 담긴 미학적인 차원의 장식품입니다.

    폴리네시아인들은 타라바(tarava), 우테(ute), 또는 루아우(ru’au)와 같은 노래 및 춤을 통해 영혼의 깊이를 표현합니다.

    강렬한 문화적 움직임은 ‘헤이바 이 타히티(Heiva i Tahiti)’ 같은 축제를 통해 충분히 표현됩니다. 7월에 열리는 축제 헤이바 이 타히티는 150명 가량의 가수, 댄서, 뮤지션과 배우들이 화려한 안무와 의상을 준비하여 참가합니다. 웅변이나 시 낭송으로 과거 예술의 우수함을 재발견 하기도합니다. 고대 구전에는 주로 비보(vivo)나 플룻이 배경 음악으로 연주되었습니다.

  • 1967년에 수상 방갈로가 타히티의 섬들에서 발명되었고, 남태평양 파라다이스의 전형적인 상징물이 되었습니다. 수상 방갈로에 머무는 것은 빠뜨려서는 안 될 경험입니다. 최상급 호텔과 같이 모든 편의 시설 및 서비스가 제공되며, 프라이빗한 테라스에서 타히티만의 푸른 라군 속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수상 방갈로는 프라이빗 휴가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상 방갈로는 발리 하이 보이즈(Bali Hai Boys)로 알려진 3명의 미국인들에 의해 개발되었습니다. 이들은 초가지붕 오두막을 콘크리트 기둥에 올려 물가에 세웠습니다. 현재 타히티의 섬들 대부분의 리조트에는 고요하고 매력적인 라군 위의 수상 방갈로, 스위트룸 및 빌라가 있습니다.

  • 역사를 통틀어 많은 작가, 가수, 예술가, 시인 그리고 요트 조종사들이 타히티의 섬들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일부는 타히티에서 생을 마감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역사적 인물들이 섬 생활에 대한 발자취를 남겼으며, 이는 폴리네시아 역사 유산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섬들의 매력, 환대와 생활 방식에 푹 빠진 그들은 각각 본인들만의 방법으로 전 세계에 타히티의 섬들을 알렸습니다.

    • 허먼 멜빌(Herman Melville) (1819-1891), 미국의 작가이자 모험가였던 허먼 멜빌은 소설을 통해 남태평양을 처음 언급했습니다(1846년 “타이피(Typee)”, 1847년 “오무(Omoo)”). 그는 1841년 호주의 고래잡이배를 타고 타히티에 도착해 수개월을 보냈고, 모레아에 잠시 머물렀습니다.
    •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 프랑스의 화가인 폴 고갱은 1891년부터 타히티에 살기 시작했고, 생을 마감하기 전 마지막 2년은 마르키즈 제도의 히바오아 섬에서 지냈습니다. 문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던 그는 타히티에서 많은 불운을 겪었습니다. 고갱은 폴리네시아인들, 특히 마르키즈인들에게 항상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19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화가 중 한 명으로 남았습니다. 그는 히바오아의 아투오나(Atuona) 공동묘지에 묻혔습니다. 파페에테의 폴 고갱 박물관과 히바오아의 폴 고갱 문화 센터는 그의 작품 일부를 재현할 뿐만 아니라 이단자의 삶을 전반적으로 보여주기도 합니다.
    • 피에르 로티(Pierre Loti) (1850-1923), 프랑스의 해군 장교이자 작가인 피에르 로티는 타히티의 섬들을 배경으로 1879년 소설 “Rarahu, Polynesian Idyll”를 집필했고, 이는 “Le Mariage de Loti”라고도 알려져 있다. 1931년에 세워진 작가의 동상 옆 바인 로티(Bain Loti)에서는 수영을 할 수 있습니다. (지도보기).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 (1850-1894), 스코틀랜드 소설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1888년에 태평양으로 여행하던 중 요트 코스코(Cosco)를 타고 타히티의 섬들을 방문했습니다. 그 후 1891년에 “In the South Seas”를 썼습니다.
    • 제임스 노먼 홀(James Norman Hall) (1887-1951), “바운티 호의 반란(Mutiny on the Bounty)”과 “허리케인(The Hurricane)” (adapted for the screen)의 공동 작가 중 한 명인 미국의 작가 제임스 노먼 홀은 1920년에 타히티를 집으로 삼았습니다. 1951년에 사망한 그는 1985년에 사망한 폴리네시아 출신의 배우자 라라와 함께 아르우에(Arue)에 있는 집 언덕 위에 묻혔습니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탈바꿈했으며, 역사 기념물로 분류된 그의 생가를 방문할 수 있습니다.
    • 루퍼트 브룩(Rupert Brooke) (1887-1915), 루퍼트 브룩은 영국 출신의 시인으로, 1914년 타히티를 방문한 후 “Manea”라는 유명한 시를 썼습니다. 이 고전 시로 인해 현대 영어 문헌에 타히티의 섬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 알랭 거볼트(Alain Gerbault) (1893-1941), 비행가이자 제1차 세계 대전의 영웅인 알랭 거볼트는 테니스 챔피언이자 돛단배로 세계 일주 여행을 완료한 최초의 프랑스인이기도 합니다. 1932년에 보라보라에서 6개월 동안 살았고, 1940년에 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폴리네시아의 옹호가였던 그는 식민주의와 파라다이스 섬을 파괴하는 것을 비난하는 8권의 책을 썼습니다. 1941년, 알랭 거볼트는 티모르섬에서 말라리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1947년, 그의 유물이 보라보라 바이타페 광장으로 돌아왔으며, 1951년에는 기념 명판이 세워졌습니다.
    • 말론 브란도(Marlon Brando) (1924-2004), 미국의 배우이자 감독인 말론 브란도는 1961년 영화 “바운티 호의 반란” 촬영을 마친 후 테티아로아 섬을 구입했습니다. 그는 영화에 함께 출연했던 타히티 출신의 타리타 테리파이아(Tarita Teriipaia)와 결혼하여 1972년도까지 10년 동안 함께 살았습니다.
    • 베르나르드 무아테시에(Bernard Moitessier) (1925-1994), 프랑스의 작가이자 요트 조종사인 베르나르드 무아테시에는 타히티와 투아모투 제도에서 12년을 살았습니다. 그 후 아헤(Ahe)로 이사하여 가족과 함께 유기농 과일과 채소를 재배하는데 힘썼습니다. 그는 태평양에서의 핵 실험을 비판했던 비평가이기도 했습니다.
    • 자크 브렐(Jacques Brel) (1929-1978), 벨기에의 싱어송라이터이자 배우인 자크 브렐은 마르키즈 제도에서 요트 Askoy에 탑승하여 성공적인 커리어들을 뒤로하고 파트너와 함께 은퇴했습니다. 폐암에 시달린 그는 히바오아에서 3년을 지낸 후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개인 항공기인 Jojo를 이용하여 섬 주민들에게 많은 도움을 베풀었으며, 아투오나(Atuona) 공동묘지에 묻혔습니다. 히바오아에 있는 작은 자크 브렐 문화센터는 마르키즈 제도의 가수로서의 삶을 알려줍니다. 그의 노래 중 “Les Marquises”는 단순한 생활 방식을, “The Land of Men”는 주민들의 장점을 묘사합니다.
    • 조 다상(Joe Dassin) (1938-1980), 타히티에서 생을 마감한 미국계 프랑스 싱어송라이터 조 다상은 타하에서 거주했는데, 그가 구매한 고급 빌라는 토레토레아(Toretorea) 포인트와 보트 또는 도보로만 갈 수 있는 티아마하나(Tiamahana) 사이의 해변에 위치했습니다. 파페에테에 위치한 레스토랑 겸 바인 ‘A plaque at Le Retro’는 1980년 8월 20일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그의 죽음을 기립니다.
    • 알랭 콜라스(Alain Colas) (1943-1978), 프랑스 출신의 요트조종사인 알랭 콜라스는 단독 세계 일주를 마친 최초의 인물입니다. 1978년에 아조레스 제도를 통과한 후 대서양 횡단 요트 경기(Route du Rhum) 중 바다에서 길을 잃은 알랭 콜라스는 폴리네시아인 Teura Krause를 만나 타히티에서 살기 시작했고, 3명의 아이를 낳았습니다.
    • 바비 홀컴(Bobby Holcomb) (1947-1991), 시인이자 가수, 뮤지션, 댄서, 화가인 바비 홀컴은 1976년 후아히네로 이주했고, 14년 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다른 유명인 및 예술가들과 함께 마오히 문화 부흥 운동에 깊이 관여했으며, 타히티의 섬들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가 중 한 명입니다. 그는 후아히네의 신성한 산인 모우아 타푸(Mou’a Tapu)에 묻혔습니다.
  • 타히티의 섬들의 자연 경관은 많은 감독 및 제작자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프렌치 폴리네시아에서 촬영된 장편 영화는 주로 영어로 출판 된 책을 각색한 것입니다.

    타히티의 섬들에서 촬영된 가장 유명한 영화 중 몇 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영화 애호가들은 타히티의 섬들을 여행하는 동안 영화 촬영지를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 “A Ballad of the South Seas” (1912), 조르주 멜리에스(Georges Méliès) 형제가 찍은 “A Ballad of the South Seas” 는 파페에테에서 촬영되었습니다. 불행히도, 이 영화는 더 이상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 “White Shadows in the South Seas” (1927), 로버트 플래허티(Robert Flaherty)가 연기한 “남해의 하얀 그림자(White Shadows in the South Seas)”는 마르키즈 제도에서 촬영되었습니다. 그는 “Trader Horn”, “Eskimo”, “Tarzan”를 감독하고 “San Francisco”를 제작한 반 다이크(Van Dyke)와 함께 감독했으며, 이 영화는 이국적인 영화에서 최고의 성과라고 간주됩니다. 초현실주의자가 존경받던 시대에, 그는 낙원을 잃을 수 없다고 생각하여 폴리네시아 섬들의 식민지화를 반대하였습니다.
    • “Tapu / Tabu / A story of the South Seas” (1929), 유명한 독일 영화감독 프리드리히 빌헬름 무르나우(F. W. Murnau)의 무성영화 “Tapu / Tabu / A story of the South Seas” 는 로버트 플래허티(Robert Flaherty)가 쓴 섬 주민들의 일상생활 이야기를 바탕으로 보라보라에서 촬영되었습니다. 나체로 수영하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몇몇 장면들은 미국과 핀란드에서 검열되었습니다. 영화 촬영은 익사, 음독, 미스터리한 폭발 등으로 인해 18개월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무르나우와 그의 팀은 오래된 묘지에 그들의 본사를 세웠고, 신성한 산호초를 촬영하는 등 여러 지역의 금기 사항을 위반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무르나우는 영화가 개봉하기 8일 전, 뉴욕에서 일어난 차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 “Last of the Pagans” (1935), 멜빌(Melville)의 소설 “Typee”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Last of the Pagans” 는 전직 배우에서 감독이 된 리처드 소프(Richard Thorpe)가 감독하였고, MGM(Metro Goldwyn Meyer)에서 발표하였습니다. 이 영화는 인간이 습격 당하는 두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이웃 섬의 다른 종족이 습격하여 강제로 아내들을 데려간다는 내용이며, 두 번째는 인산 광산 노동자를 찾는 백인에 의해 습격이 일어난다는 내용입니다. 자막은 타히티어로 되어있습니다.
    • “Mutiny on the Bounty”, 1935년에 촬영된 첫 번째 할리우드 버전 “바운티 호의 반란(Mutiny on the Bounty)”은 프랭크 로이드(Frank Lloyd)와 클라크 게이블(Clark Gable)이 감독을 맡았지만 흥행하지 못했습니다. 더 잘 알려진 1962년작 영화는 2000명이 넘는 배우, 8000명의 엑스트라, 2700만 달러의 예산으로 폴리네시아 경제에 붐을 일으켰습니다. 촬영이 끝난 후 말론 브란도는 테티아로아 섬을 구매했습니다. 1984년에는 모레아에서 로저 도널드슨(Roger Donaldson) 감독의 축소 버전이 촬영되었고, 멜 깁슨(Mel Gibson)과 안소니 홉킨스(Anthony Hopkins)가 주연을 맡았습니다. HMS 바운티호는 남태평양을 항해한 18세기의 많은 배들 중 하나였지만, 그 반항적인 항해는 오타헤이테(Otaheite)라고 불리우던 타히티를 세계에서 가장 악명 높은 낙원으로 만들었습니다. 1932년에 책이 출간되고 그 후 1933년, 1962년, 1984년에 영화로 각색되면서 섬의 아름다움이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 “Tahiti ou la Joie de Vivre” (1957), 버나드 보르드리(Bernard Borderie)감독, 조지 드 칸니스(Georges de Caunes) 주연의 코미디 영화입니다. 기자가 지구상의 천국을 찾기 위해 타히티로 여행한다는 내용입니다.
    • “The Restless and the Damned” (1961),이브 알레그레(Yves Allégret) 감독의 “The Restless and the Damned”는 인산염 광산에서 행운을 찾기 위해 폴리네시아로 이주한 커플의 문제점을 이야기합니다.
    • “Tiara Tahiti” (1962), 테드 코체프(Ted Kotcheff)가 감독을 맡은 영국 영화입니다. 타히티에 살고 있는 모험가는 자신을 군법회의에 회부한 전직 사령관을 우연히 만납니다. 복수를 위해 그는 관광사업에 종사하는 전직 사령관의 삶을 힘들게 만들기로 결심합니다.
    • “Tendre Voyou” (1966), 진 베커(Jean Becker)가 감독하고 쟝 뽈 벨몽도(Jean-Paul Belmondo)가 주연을 맡은 “Tendre Voyou” 는 제비족의 행동을 담았습니다.
    • “Hurricane” (1979), 디노 데 로렌티스(Dino de Laurentis) 감독은 제임스 노먼 홀(James Norman Hall)과 찰스 노르도프(Charles Nordoff)의 소설에서 영감을 받아 “허리케인(Hurricane)”을 촬영했습니다. 보라보라에서 촬영된 해당 영화는 1937년작 ‘허리케인’을 리메이크한 작품입니다.
    • “Le Bourreau des Cœur” (1983), 크리스티앙 기온(Christian Gion)이 감독한 “Le Bourreau des Cœur” 는 테티아로아에서 촬영되었고, 배우 알도 마시온(Aldo Maccione)이 출연했습니다. 160만장 이상의 티켓이 팔렸고, 프랑스 박스 오피스에서 큰 흥행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 “Les Faussaires” (1994),로맹 가리(Romain Gary)의 소설 “Les Faussaires” 을 바탕으로 한 “La Tête Coupable,” 는 프레데릭 블럼(Frédéric Blum)이 감독하였습니다. 내용은 폴 고갱의 위인전을 쓰기 위해 타히티로 온 작가의 이야기입니다.
    • “Love Affair” (1994), 고몽(Gaumont) 사에서 발표한 “러브어페어(Love Affair)” 는 사랑 이야기이자, 1939년작 러브어페어 영화를 리메이크한 것입니다. 타히티에서 촬영된 러브어페어는 케서린 헵번(Katharine Hepburn)이 주연을 맡았고 그녀의 마지막 출연작입니다.
    • “Les Perles du Pacifique” (1999)는 고몽(Gaumont) 사가 제작하였고, 진주 농장에서의 삶을 그린 13부작의 TV드라마입니다.
    • “Le Prince du Pacifique“, 알랭 코르노(Alain Corneau)가 감독한 “Le Prince du Pacifique“ 는 후아히네에서 촬영되었으며, 띠에리 레미띠(Thierry Lhermitte)와 패트릭 팀싯(Patrick Timsit)이 출연합니다.
    • “South Pacific” (2001)은 리차드 피어스(Richard Pierce)가 감독하고, 해리 코닉 주니어(Harry Connick Jr.)와 글렌 클로즈(Glenn Close)가 출연한 뮤지컬 코미디입니다.
    • “Couples Retreat”는 유니버셜 스튜디오에 의해 개봉되었으며, 2008년 보라보라에서 촬영되었습니다. 7백만 달러가 투자된 지역 영화였지만, 그 해 유니버셜 영화 중 가장 높은 수익을 올렸습니다. 제작자는 대략 50명의 언론인들을 촬영지로 초대하기도 했습니다.
    • “L’ordre et la Morale” 마태오 카소위츠(Matthieu Kassowitz)가 감독한 “리벨리온(L’ordre et la Morale)”은 뉴칼레도니아의 우베아에서 일어난 사건을 배경으로 제작되었고, 투아모투의 작은 섬 아나(Anaa)에서 촬영되었습니다. 누메아 섬에서 일어난 사건의 내용은 파페에테에서 촬영되었습니다.

    TV쇼와 다큐멘터리

    매년 타히티의 섬들은 다큐멘터리, TV 리얼리티 쇼, 쿠킹 쇼와 세계적인 주요 브랜드의 광고 촬영을 위한 장소로 선정되었습니다. 테아후푸 해변뿐만 아니라 다른 제도의 숨겨진 장소에서 즐기는 서핑은 영화 제작자 또는 감독이 단연 좋아하는 소재입니다. 상어와 7월에서 11월까지 해역에서 볼 수 있는 혹등고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2002년에는 마르키즈 제도의 누쿠히바에서 미국 드라마 “서바이버(Survivor)”가 촬영되었으며, 북미 지역에 타히티를 더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시청각 통신 협회(ICA)에서는 타히티의 섬들의 시청각 자료를 보관하고 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오세아니아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 페스티발(FIFPO)은 이 지역 최고의 다큐멘터리를 상영했습니다. FIFO는 매년 2월 문화 회관(Maison de la Culture)에서 개최됩니다.

  • 현재까지 내려오는 통상적인 이론에 따르면, 아웃리거 카누는 약 3-4000년 전 동남아시아에서 폴리네시아로 이동한 이주민들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이주민들은 기원전 500년부터 약 천 년 동안, 바람과 물의 흐름, 그리고 별에 대한 지식을 이용하여 쿡 제도, 타히티의 섬들과 같은 남태평양으로 이주하였고, 섬유로 만든 이중 돛을 나무와 끈으로 묶어 아웃리거 카누를 만들었습니다.

    이주민들은 이 위대한 원정을 통해 북쪽의 하와이, 동쪽의 이스터 섬, 서쪽의 타히티의 섬들, 그리고 남서쪽의 뉴질랜드로 구성된 폴리네시안 삼각지대에 다다랐습니다. 마오히어에서 유래되어 사용되고 있는 각 섬들의 다양한 언어가 바로 공통의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카누

    이중 선체의 거대한 아웃리거 카누는 티파이루아(tipairua)라고 불렸으며, 폴리네시아 인들은 별, 바람, 조류와 함께 항해하여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냈습니다. 오늘날 카누는 타히티인들의 일상 생활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다채로운 경주와 축제에서 영예를 얻고 있습니다. 유럽인들이 지구가 둥글다는 결론을 내리기 수 세기 전, 폴리네시아인들은 이미 광활한 태평양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하와이키 누이 바아(Hawaiki Nui Va’a): 세계에서 가장 크고 긴 국제 아웃리거 카누 대회이며, 약 120km의 머나먼 여정입니다. 경기는 총 3단계로 나뉘어지고 1단계는 후아히네에서 라이아테아, 2단계는 라이아테아에서 타하, 그리고 3단계는 타하에서 보라보라로의 코스로 진행됩니다. 대회를 기념하기 위해 시작과 끝 무렵에는 타히티 음식과 음악이 곁들여진 성대한 축제가 열립니다.

  • 16세기에 마젤란(Magellan)과 멘다냐(Mendana)는 각각 투아모투 제도와 마르키즈 제도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타히티의 섬들 을 발견함에 있어서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은 사무엘 월리스(Samuel Wallis)였습니다. 1767년에 섬을 발견하였고, 다음 해에 프랑스인 앙트완 드 부갱빌(Antoine de Bougainville)은 이 섬을 뉴 키테라로 칭하였습니다. 그다음 해에 타히티의 섬들은 서로 다른 신을 섬기는 여러 개의 족장 사회 및 왕국으로 나뉘었고, 개신교와 가톨릭 선교사들은 섬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후 1797년에는 한 족장이 유럽인들의 도움으로 패권주의를 설립하는데 성공하였고, 포마레 왕조를 창립했습니다.

    19세기 타히티의 섬들은 프랑코 및 영국의 종교적, 산업적, 전략적 경쟁의 배경이었습니다. 1842년, 마침내 포마레 4세에 의해 프랑스 보호령이 내려졌고, 1880년에는 타히티의 마지막 왕인 포마레 5세에 의해 합병되었습니다.

    1960년대는 타히티의 섬들이 발전하게 된 뚜렷한 터닝 포인트입니다. 1963년 태평양 실험 센터(CEP)가 설립되었고, 타히티로 주민들이 유입되면서 지역 경제가 급속히 성장했습니다.

    타히티의 섬들의 역사 연대기

    • 기원전 3,000-4,000년: 동남아시아로부터 많은 인원이 남태평양에 정착
    • 3-6세기: 마르키즈 제도에 첫 이주민이 정착
    • 850년-1000년: 마르키즈 제도, 윈드워드 제도, 하와이, 쿡 제도, 이스터 섬과 뉴질랜드의 식민지화
    • 1521년: 마젤란의 투아모투 제도 일부 발견
    • 1595년: 알베로 드 멘다냐(Alvero de Mendena)의 마르키즈 제도 발견
    • 1767년: 월리스(Wallis)의 타히티 도착
    • 1768년: 부갱빌(Bougainville)이 섬을 뉴 키테라로 명칭
    • 1774년: 쿡이 타히티인 파이(Pa’i)를 유럽으로 연행
    • 1773년: 쿡의 두 번째 타히티 여행
    • 1777년: 쿡의 마지막 폴리네시아 여행
    • 1788-1791년: 바운티 호의 반란사건
    • 1793년: 포마레 왕조의 시작
    • 1797년: ‘런던 선교사 협회’의 첫 선교사 도착
    • 1797년: 포마레 왕조의 창립
    • 1815년: 폴리네시아의 족장이 페이 피(Fei Pi) 전투에서 패배, 포마레 2세의 기독교 수용
    • 1819년: 포마레 2세의 포마레 법전 제작
    • 1836년: 영국 개신교자들이 프랑스인 선교사를 추방
    • 1841년: 타히티를 프랑스 보호령으로 지정
    • 1844-1847년: 프랑코-타히티 전쟁 발발
    • 1847년: 포마레 4세의 프랑스 보호령 수렴
    • 1914-1918/1939-1945년: 수많은 섬주민들의 프랑스 군대 지원
    • 1958: 오세아니아의 프랑스 설립기관(EFO)이 프렌치 폴리네시아로 변경